카톡 글 ,사진 ,영상
여덞명의 자식과 한 명의 애인 , 양사언(楊士彦)과 어머니
행복나눔이2
2025. 1. 21. 07:35
💖 여덞명의 자식과 💖 ☘ 한명의 애인 ☘
엄마가 57세에 혼자가 되어버렸다.
나의 이혼소식에 쓰러진 아버진 끝내 돌아오지 못하셨고
그렇게 현명하셨던 엄마는 정신이 반 나간 아줌마가 되어
큰오빠, 작은오빠 눈치보기 바빴다.
이제 아버지 노릇을 하겠다는 큰오빠 말에 그 큰집을 팔아 큰오빠에게 다 맡겼고
나 몰라라 하는 큰오빠 때문에 작은 오빠의 모든 원망을 다 감수해야 했다.
사이 좋았던 팔남매가 큰오빠 때문에 모이는 횟수가 줄어들수록
엄마의 표정은 점점 굳어져갔고 노름하는 아들한테 조차 할 말을 못하는 딱한 처지가 되어버렸다.
그걸 이해하는 난 엄마가 원하는대로 형제들에게 돈을 풀어주었고
그런 나에게 미안했던 엄마는 가끔 나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다.
'널 낳지 않았으면 난 어떡할 뻔 했니?'
'괜찮아 엄마, 엄마는 우리 여덟 잘 키웠구
큰오빠가 지금 자리잡느라고 힘들어서 그렇치, 효자잖어.
이젠 새끼 걱정 그만하고 애인이나 만들어서 즐기고 살어!'
'난 애인은 안돼 니 아빠같은 남자가 없어' 그러던 엄마가 어느날 나에게 슬그머니 말씀하셨다.
'남자친구가 생겼어. 작년 해운대 바닷가 갔다가 만났는데
괜찮은거 같아서 가끔 같이 등산간단다.' 어쩐지... 자꾸 등산을 가더라...
뭐하는 분인데? '개인병원 의사인데 사별했대.'
'이번 엄마 환갑때 초대해봐. 내가 언니 오빠들한테 말해놓을께.'
우린 엄마 생신때 호텔 연회장을 하나 빌렸고 엄마 지인들과 여고 동창들을 다 초대했다.
그리고 그 아저씨도... 엄마 남자친구는 멋졌다.
그리고 어울렸고 아버지와 비슷한 분위기를 풍겨 더 좋았다.
'그집 아들들이 재혼을 원한다는데 어쩌지? 혼자 계시는 아버지가 좀 그렇다네.'
모두들 찬성이었다.
그런데 작은 오빠가 길길이 뛰기 시작했고 '안돼 엄마 그런게 어딨어,
우리 불쌍한 아버진 어쩌라구! 이 나이에도 남자가 필요해?
우리 자식보며 살면 안돼? 창피해!
형은 장남이 돼 가지고 엄마 모시기 싫어서 그래? 내가 모실테니 걱정마
그러면 아버지 제사땐 어쩔껀데,
엄마! 아직 난 엄마가 필요 하다구!!!' 말도 안되는 궤변을 늘어놓는
미친 놈이 보기싫어 형제들은 다 가버렸고 소리지르며 욕을 퍼붓는 나를 엄마가 막으셨다.
"그만해라, 없었던 일로 하마." 그리고 다음 해!
어느날 술이 잔뜩취해 올캐와 싸웠다고 작은 오빠가 전화가 오고
가지말라고 말리는 나를 뒤로 하고간 엄마는 다음날 병원 응급실에서 만났다.
새벽에 얼까봐 수돗물을 틀어 놓으러 나오셨다가 쓰러져 뒤늦게 발견된 엄마!
우리 자식들은 중환자 실에 누워있는 혼수상태의 엄마를 처음엔 매일 붙어 있었지만
시간이 좀 흐르자 언제 끝날지 모르는 것에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슬슬 볼일들을 보기 시작했고 면회시간을 꼭 지켜 기다리고 있는 건
병원을 맡기고 온 원장님 뿐이었다.
우린 깨어나지 않는 엄마를 기다릴 뿐이었는데 원장님은 엄마를 주무르며 계속 속삭였다
'박여사 빨리 일어나요. 우리 전에 시장가서 먹었던 선지국밥!
그거 또 먹으러 갑시다. 내가 사준 원피스도 빨리 입어 봐야지요!'
병원에서 우리 형제들을 불러놓고 말했다.
'이제 병원에서 해줄 것은 없습니다. 퇴원하셔야 됩니다.'
평생 '식물인간' 이라는 판정과 함께 어디로 모셔갈껀지를 정해 줘야 차로 모셔다 준다는 말에
모두들 헉!
큰 올캐가 먼저 말했다. 자신은 환자를 집에 모시는건 못한다고.
둘째 오빠가 말했다. 맞벌이라 안된다고.
장가도 안간 스물 여덞살 막내동생은 울기만 한다.
딸들 표정은 당연히 큰오빠가 해야지 본인들 하곤 상관없는 이야기였다.
오빠들은 '그동안 니가 모셨으니 계속하면 안될까?' 하는 표정으로 날 본다
그냥 누워계시는게 아니라, 산소 호흡기를 꽂고 있어야 하니
모두들 선뜻 대답을 못했다' 난 결국 내 집인줄은 알지만 그런 형제들 꼴을 쳐다보고 있는데,
'저~제가 감히 한마디 해도 되나요?' 언제 오셨는지 우리 곁으로 오신 원장님.
'제가 그때 박여사와 재혼을 말했을 때 박여사가 이렇게 말했어요.
'아직 우리 애들한텐 엄마가 필요한가봐요. 자식들이 내가 필요없다 하면 그때 갈께요' 했어요.
지금도 엄마가 필요하세요? 난 저렇게 누워있는 사람이라도 숨만 쉬고 있는 박여사가 필요합니다.
나한테 맡겨주세요. 내 병원이 박여사한텐 더 편할껍니다.'
작은 오빠가 통곡을 했다. 다른 형제들이 울기 시작했다.
결국 엄마는 퇴원을 못하고 돌아가셨다.
모두 저 마다 믿는 신에게 기도했겠지만 난 엄마에게 부탁했다.
'엄마! 엄마의 이뻤던 모습만 보고 먼저간 아버지는 잊고 엄마의 추한 병든 모습까지도 사랑한
이 원장님만 기억하고 가, 엄마! 엄마는 팔남매 키운 공은 못보고 가셨지만
여자로 사랑만큼은 멋있었어'
67세에 우리 엄마는 그 가슴 졸이며 평생 키운 팔남매가 아닌
몇년 만난 남자의 손을 잡고 마지막 숨을 거두셨다.
자식이 식물인간이 돼 있다면 부모는 무엇을 이유로 댈까.
우리 팔남매는 엄마를 모셔가지 못할 이유가 다 있었다.
더 끔찍한 것은 나도 그 입장이라면 그런 핑계를 대지 않았을까?
이해가 된다는 것이었다. 우리 엄마한테 묻고싶다.
'엄마~ 또 다시 새 인생을 준다면 팔남매 또 낳을꺼야? *
이 글을 어떻게 읽으셨나요? 혼자보기엔 너무 아까운 감동의 글 아닌가요?
그러나, 이 글은 우리 모두가 처한 환경일 수도 있습니다.
🍒오늘도 건강하고 행복한 하루 되세요🎶😄
🎁 - 옮겨 온 글 - 🎁
☘️ 양사언(楊士彦)과 어머니 ☘️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리 없건마는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
이 詩는 우리가 알기로는 양사언이 모든 일에 노력하면
안 되는 일이 없다는 교훈 조 詩로만 알고 있었는데
깊은 내력을 살펴보니 처절하게 살다간 어머니를 그리는 詩라는 해석이
KBS 역사 이야기에서 밝혀졌다.
“양사언(楊士彦)과 그의 어머니” 우리 선조들로부터 현세에 이르기 까지
위대한 인물들뿐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까지도 대부분 그들 어머니의 은공이 뒤에 숨어 있고,
이러한 모성애의 은공으로 훌륭한 인물은 더욱 훌륭한 인물로 재탄생 되어질 수 있었다.
우리들도 익히 알고 있는 율곡과 신사임당, 만호 한석봉과 그의 어머니 이야기는 너무나 유명해 모르는 분들이 없을 것이다.
아들을 훌륭하게 키운 대표적 한민족의 어머니이리라. 그러나 "양사언과 그의 어머니"에 대하여 아는 사람들은 흔하지 않다.
양사언의 아버지 '양 민'이 전라도 영광의 사또로 부임해 내려가는 꽃 피는 삼월의 어느 날
어느 촌 고을을 지날 즈음, 농번기라 사람들이 집에 없었다.
이 집 저 집 둘러보는 중에 어느 한 집에서 한 소녀가 공손하게 나와 식사 대접을 하겠노라고 아뢴다.
그리고는 신관 사또가 거리에서 식사를 할 수 있겠냐고 하며 안으로 모시고 부지런히 진지를 지어 올린다.
하는 태도나 말솜씨가 어찌나 어른스러우며 예의 바른지 사또는 너무나 기특하게 여긴다.
조반을 잘 얻어먹은 젊은 신관 사또 '양 민'은 고마움에 보답을 하게 되는데...
신관 사또 '양 민'은 소매에서 부채 靑扇(청선)과 紅扇(홍선) 두 자루를 꺼내 소녀에게 준다.
그냥 전달하기는 멋쩍어 농담을 섞어 "이는 고마움으로 내가 너에게 채단 대신 주는 것이니 어서 받으라."
‘채단'이라 함은 결혼 전에 신랑 집에서 신부 집으로 보내는 청색홍색의 옷감들이 아닌가.
깜짝 놀란 소녀는 안방으로 뛰어가 장롱을 뒤져 급히 홍보를 가져와서 바닥에 깔고 靑扇(청선), 紅扇(홍선)을 내려놓으라고 한다.
어리둥절한 사또는 왜 그러냐고 묻는다. "폐백에 바치는 채단을 어찌 맨손으로 받을 수 있겠습니까" 라고 말한다.
홍보 위에 놓여졌고 소녀는 잘 싸서 안방으로 가지고 들어갔다.
세월이 흘렀다. 사또 '양 민'이 이런 저런 업무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던 어느 날
한 노인이 사또를 뵙자고 찾아 왔다. "몇 년 전 부임할 때 시골집에 들려 아침 식사를 하고
어느 소녀에게 靑扇(청선), 紅扇(홍선) 두 자루를 주고 간 적이 있느냐"고 묻는다.
사또는 조금 생각하다가 "그런 일이 있었다.
그리고 생생하게 기억한다"고 말하며 아직도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고 말한다.
노인은 이제서야 의문이 풀렸다는 듯 고개를 끄떡이며 다시 말한다.
"그러셨군요. 그 여식이 과년한 제 딸년인데
그 이후로 시집을 보내려 해도 어느 곳으로도 시집을 안 가겠다고 해서
영문을 몰라 이렇게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사또의 머리속엔 어떤 느낌이 스쳐 지났는지 모두 느끼리라.
"그 정성이 지극하거늘 내 어찌 모른 척 할 수 있겠소.
날짜를 잡아 아내로 맞겠소"
식사 한 끼 얻어먹고 대가로 부채 두 자루 선물했으면 밥값으로 충분할 텐데,
졸지에 아내로까지 맞이하게 되었으니 운명의 장난인가,
신의 축복인가!~ 어디 삼류 드라마 같은 이 이야기는 실제 이야기이다.
이 소녀가 바로 후에 양사언(楊士彦)의 어머니가 된다. 중요한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사또는 정실부인이 있었고 이 부인과의 사이에 '양사준'이라는 아들이 있었다.
그리고 후처, 즉 소실인 이 소녀와의 사이에 士彦(사언)과 사기, 두 아들이 탄생한다.
사준, 사언, 사기, 이 삼형제는 자라며 매우 총명하고 재주가 뛰어 났으며 풍채도 좋아
주변으로부터 칭송이 끊이질 않았다고 하며, 형제애가 깊어 중국의 '소순, 소식, 소철' 삼형제와 비교되기도 했다고 한다.
정실부인이 죽고 모든 살림살이를 후처인 사언의 어머니가 도맡아 하게 되고 아들들을 훌륭하게 키웠다.
그러나 아들들이 아무리 훌륭하면 뭐하냐 서자들인데...
이 소실부인의 서러움과 한탄은 적자가 아닌 서자를 낳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소실부인의 꿈은 자기 아들들의 머리에서 서자의 딱지를 떼 내는 일이었다.
'양 민'이 죽고 장례 날에 가족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눈물 흘리며 말한다.
"양씨 가문에 들어와 아들을 낳았으며, 아들들이 재주 있고 총명하며 풍채도 있거늘
첩이 낳았다 하여 나라 풍습은 그들에게서 서자의 너울을 벗겨주지 않는다."
그러면서 장손인 적자 양사준에게 울면서 부탁한다.
"첩이 또한 이 다음에 서모의 누를 가지고 죽은 후라도 우리 큰 아드님께서는 석 달 복밖에 입지 않으실 터이니,
이리 되면 그때 가서 내가 낳은 두 아들은 서자 소리를 면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니 내가 지금 영감님 성복날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 복제가 혼돈하여 사람이 모르게 될 것입니다.
내 이미 마음을 다진 몸, 무엇을 주저 하오리까 만은
내가 죽은 뒤 사언, 사기 두 형제한테 서자란 말로 부르지 않겠다고 약속하면
죽어서도 기꺼이 영감님 곁에 누울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바로 양사언의 어머니는 가슴에 품고 있던 단검을 꺼내 자결을 하고 만다.
아들들이 그녀를 부둥켜안았을 땐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자기 아들을 서자의 멍에를 풀어주고 떳떳하게 세상을 살아가게 하고 싶었던 여인,
죽음으로써 부조리한 인간 차별화를 타파하고 싶었었던 선구자적인 신여성
이 어머니의 죽음은 양사언이 더욱 훌륭한 문인이 되는데 자양분이 되었으리라.
양사언(楊士彦)은 후에 장원 급제하여 높은 관직에 오르게 되고
만호 한석봉과 추사 김정희와 더불어 조선 3대 서예가로 이름을 떨쳤다.
🎁 - 지인 카톡 글 - 🎁
우리 벗님들~! 健康조심하시고
親舊들 만나 茶 한잔 나누시는
餘裕롭고 幸福한 나날 되세요~^-^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