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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슴 따뜻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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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서울에서 중고 컴퓨터 장사를 합니다. 얼마 전 저녁때 전화를 한 통 받았습니다
"여기는 칠곡이라는 지방인데요. 6학년 딸애가 있는데 서울에서 할머니랑 같이 있구요..(중략).. 사정이 넉넉치 못해서 중고라도 있으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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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화 내내 말끝을 자신 없이 흐리셨습니다 열흘이 지나서 쓸만한 게 생겼습니다. 전화 드려서 22만원 이라고 했습니다. 3일 후에 들고 찾아 갔습니다.
전화를 드리자, 다세대 건물 옆 귀퉁이 샷시 문에서 할머니 한 분이 손짓을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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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서자 지방에서 엄마가 보내준 생활비로 꾸려나가는 살림이 넉넉히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설치 하고 테스트 하고 있는데 밖에서 소리가 들리더니 '어 컴퓨터다!' 하며 딸아이가 들어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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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공부 잘하라고 엄마가 사온거여, 학원 다녀와서 실컷 해. 어여 갔다와.."
설치가 끝나고 골목길 지나고 대로변에 들어서는데 아까 그 아이가 정류장에 서있습니다
"어디루 가니? 아저씨가 태워줄께.."
보통 이렇게 말하면 안탄다 그러거나 망설이기 마련인데
"하계역이요~"
그러길래 제 방향과는 반대 쪽 이지만 태워 주기로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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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10분 갔을까. 아이가 갑자기 화장실이 너무 급하다고 합니다.
"쫌만 더 가면 되는데 참으면 안돼?" "그냥 세워 주시면 안돼요?"
패스트푸드점 건물이 보이길래 차를 세웠습니다 "아저씨 그냥 먼저 가세요..."
여기까지 온 거 기다리자 하고 담배 한대 물고 라이터를 집는 순간 가슴 속에서 '쿵~~' 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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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조석 시트에 검빨갛게 피가 있는 것입니다. '아차...' 첫 생리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담뱃재가 반이 타 들어갈 정도로 속에서 '어쩌나~어쩌나~' 그러고만 있었습니다.
바지에 묻었고, 당장 처리할 물건도 없을 것이고, 아이가 화장실에서 할 수 있는 것이 없을 텐데...
아까 사정 봐서는 핸드폰도 분명 없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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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에 비상등을 켜고 내려서 속옷가게를 찾았습니다.
버스 중앙차로로 달렸습니다.
마음이 너무 급했습니다.
마음은 조급한데 별별 생각이 다 났습니다.
집사람한테 전화 했습니다.
'어디야?' '나 광진구청' '너 지금 택시타고 빨리 청량리역... 아니 걍 오면서 전화해.. 내가 택시.. 찾아 갈께'
'왜? 뭔 일인데'
집사람에게 이차 저차 얘기 다 했습니다. 온답니다. 아, 집사람이 구세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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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리대 샀어?" "속옷은?" "사러 갈라고.." "바지도 하나 있어야 될꺼 같은데.."
"근처에서 치마 하나 사오고.. 편의점 가서 아기물티슈두 하나 사와.."
"애 이름이 뭐야? " "아..애 이름을 모른다.. 들어가서 재주껏 찾아봐.."
집사람이 들어가니 화장실 세 칸 중에 한 칸이 닫혀 있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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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 있니? 애기야. 아까 컴퓨터 아저씨 부인 언니야.'
뭐라 뭐라 몇 마디 더 하자 안에서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네....' 하더랍니다.
그때까지 그 안에서 혼자 소리 없이 울면서 낑낑대고 있었던 겁니다.
혼자 그 좁은 곳에서 어린애가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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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에서 기다리는데 문자가 왔습니다.
"5분 이따 나갈께 잽싸게 꽃 한 다발 사와"
이럴 때 뭘 의미하는지 몰라서 아무거나 이쁜 거 골라서 한 다발 사왔습니다
둘이 나오는데 아이 눈이 팅팅 부어 있더군요.
집사람을 첨에 보고선 멋쩍게 웃더니 챙겨 간 것 보고 그때부터 막 울더랍니다..
집사람도 눈물 자국이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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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도 먹이려고 했는데 아이가 그냥 집에 가고 싶다고 합니다.
집에 돌아가는 도중 우리는 다시 돌아가 봉투에 10만원 넣어서 물건값 계산 잘못 됐다고 하고 할머니 드리고 왔습니다.
나와서 차에 타자 집사람이 제 머리를 헝클이며 '짜식~' 그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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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11시 무렵 전화가 왔습니다. 아이 엄마 입니다.
"네. 여기 칠곡인데요. 컴퓨터 구입한....." 이 첫마디 빼고 계속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저 역시 말 걸지 않고 그냥 전화기를 귀에 대고만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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