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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가지 깨달음

좋은 글

by 행복나눔이2 2022. 11. 20.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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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지공거사의 일갈


지하철 일반석 앞에서

백발의 한 늙은이
손잡이에 매달려 가는 걸 보고

자리를 잡고 앉아있던 젊은 사람 하나
혼잣말인 듯 중얼거린다

지하철 공짜로 타는 주제에
남의 자리까지 넘보고 있구먼…

귀 밝은 이 노인 알아 들으시고
젊은이를 내려다보며 한 말씀 하신다

어, 젊은 친구!
나라 잃은 설움 겪어 본 적 있나?

목숨을 걸고
전쟁터에 나가 싸워본 적 있나?

주린 배 움켜잡고
새벽부터 새마을운동 해 봤나?

수백 미터 땅속에 들어가
석탄 캐 본 적 있나?

열사의 땅 저 중동에 가서
막노동해 본 적 있나?

여봐 젊은이!
오늘날 이만큼 잘 살게 된 건

지나간 세대―늙은이들의
피와 땀으로 이루어진 걸 모르나?

내가 공짜로 지하철을 탄다고?

자네가 이렇게 편하게
잘 살 수 있는 건 누구 덕인데?

이 나라와 사회를 위해
자넨 뭘 했나?

민주화 투쟁을 했다고?

껍적대지 마라
이 우라질 놈!

○ 글(詩) : 임보
○음악 : 산다는 것은 / 김종찬
○편집 : 송 운(松韻)




두 가지 깨달음

/ 임보

모처럼 동네 이발소에 간다고
아내에게 신고하고 밖엘 나온다

'날씨가 꾸물하니 우산을 챙겨 가세요!'

아내의 충고를 무시하고 그냥 나온 내게
'비가 오면 전화 하세요!'

아내가 다시 당부한다

아차! 마스크를 미처 못 챙기고 나왔다
길에 가는 사람들을 보자 생각이 났다

다시 집에 돌아가기는 귀찮고 해서
약방에 들러 마스크를 사서 끼고 이발소로 간다

이발을 하는 동안 창밖을 보니
행인들이 우산을 쓰고 지나간다

이발을 다 끝내고 나오려 하니
비가 억수로 쏟아진다

집에 연락을 하려고 주머니를 만져보니 휴대폰이 없다

어떻게 하지?
주변에 우산 파는 상점도 없는데…

전화기를 빌어 집에 연락을 해 본다?

그런데
아내의 전화번호가 깜깜하다

내 휴대폰에서
아내의 번호는 늘 1번이므로

아내의 진짜 전화번호는
내 뇌리에서 이미 사라졌다

장대비를 맞으며
빗속을 달리면서 깨닫는다

아내의 말을 잘 들으면
만사형통이라는 진리를!

비에 흠뻑 젖어 장닭처럼
허둥대며 비로소 깨닫는다

그 휴대폰이 바로
내 생명줄이라는 사실을!



가장 맛있는 밥상


/ 임보

산해진미로 가득한
교자상이라고요?

배가 꼬르르 시장할 때
마주한 밥상이라고요?

그게 아니고요
내 아내의 학설인데요

'남이 차려준 밥상'이래요!

그런 아내에게 평생 나는
맛없는 밥만 먹게 했으니…!


[4단시]

싶다가도


/ 임보

황혼 이혼을 보면
용감하다 싶다가도

이제사 저 짐을 벗고
뭘 하려나 싶기도 하고

황혼 재혼을 보면
대단하다 싶다가도

이제사 새 짐을 지고
어쩔려나 싶기도 하고


시詩를 / 임보

미당未堂은 노래라 믿었고
대여大餘는 말놀이라 여겼다

말장난에 말지랄들
시인들은 다 정신착란증 환자들!

*미당은 서정주, 대여는 김춘수 시인의 아호다.
예나 지금이나 시인들이란 어디가 좀 모자란 사람들인지 모른다.

임보 4단시집'수수꽃다리'도서출판 움.2019



시인론(詩人論)

/ 임보

한 소년이
시인은 무엇하는 사람이냐고 묻기에

아름다운 노래 만들며 살아가는
제법 멋있는 사람이라고 일러 주었다.

한 청년이 또
시인은 무엇하는 사람이냐고 묻기에

과학자가 현미경이나 망원경으로도
볼 수 없는 그런 것까지 보고 가는

눈이 깊은 사람이라고 대답했다.

한 장년이
그런 질문을 또 하기에

가난하게 살지만
세상을 여유있게 하는

다정하고 게으른 사람이라고 했더니
고개를 갸우뚱하며 지나갔다.

한 노인이 멈춰 서서
소매를 붙들고 또 그렇게 물었다,

'정말 시인은 무엇하는 놈들이냐'고

‘죽음을 너무 일찍 깨우친
세상에서 가장 고독한 놈‘이라고

그의 막힌 귀에 대고 악을 썼다



임보(林步) 시인

1940년 전남 승주출생.본명:강홍기(姜洪基)

서울대학교 국문학과 졸업 <한국현대시운율연구>로 문학박사 1962년 <현대문학> 추천으로 시인 등단

1974년 첫시집 <임보의 시들>이후 2011년 <눈부신 귀향> 등 20여권의 시집 및 많은 동인지와 시론집 펴냄. 2014년 제30회 윤동주 문학상 수상.

충북대 국문과 교수 역임. 현재 월간<우리시>편집인
필명 임보(林步)는 프랑스 상징주의 시인 랭보에서 따온 것이라 함. 논저「한국현대시 운율구조론」『엄살의 시학』등 다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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