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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게 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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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나눔이2 2023. 3. 29.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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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게 뭐라고


할머니는

시한부 삶이란 선고를 받자마자
짙은 녹색의 재규어를 샀다.

배달된 재규어에 올라 타고

'아, 나는 이런 남자를 평생 찾아다녔지만
이젠 늦었구나’ 한다.

재규어가 안 어울린다는 친구 말에는

'어째서냐.
내가 빈농의 자식이라서 그런가.

억울하면 너도 사면 되잖아.
빨리 죽으면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 사는 게 뭐라고> 는
일흔에 다가가는 독거 할머니의 솔직한 독백이다.

<100만번 산 고양이> 의
일본 동화작가 사노 요코가

65세부터 70세가 될 때까지,
2010년 암으로 세상을 뜨기 2년 전까지 쓴

일기 같은 기록을 엮었다.

그는 한때 시인 다니카와 순타로와
부부였지만 이혼했다.



사노의 나날은
비관과 독설투성이지만,

책을 읽다 보면
신기하게도 통쾌하고 즐거워 진다.

'활기차게 살아야 한다' 는 등
사람을 초조하게 만드는 책”이 아니기 때문이다.

세상만사에 초연하고
선량한 어르신과는 거리가 먼

‘나쁜 할머니’는
거짓 긍정도 위악도 부리지 않는다.

고집쟁이,
주정뱅이,

성깔 더러운 장애인 등

까탈스러운 사노의 곁에
남아 준 친구들도 마찬가지다.



사노는 가난했던 젊은 시절

자신의 옷차림을 모욕했던 여자를
68세가 돼서까지 용서하지 못하고

저주를 퍼부어 죽이고 싶어 한다.

그랬다가
정말로 그 여자가 암에 걸리자

'당황하던 와중에 나도 암에 걸렸다.
자승자박이었다' 고 되뇐다.

일본에 대한 증오를 지닌
한국인 친구를 오래 배려해 줬지만

더 견디지 못하고 절연한다.



'나도 서른여섯해 동안
당신의 압제를 견뎠다고.

이제 끝이다.

평생 원망하시지,
분이 풀릴 때까지 원망하시지.'

사노는 남에게
실컷 못되게 굴고서는

금방 풀이 죽어서
자기혐오에 빠지는 그런 사람이다.

'아, 이러다가
친구가 모조리 떨어져 나갈 것 같다.

이제 싫어하는 사람 이름을 대라고 하면
모두들 나를 가리키며

'아아, 그 사람’
하고 비웃을 것 같다.'

'나는 나와 가장 먼저 절교하고 싶다.
아아, 이런 게 정신병이다.'



그는 유방암에 걸리고도
담배를 계속 피운다.

'제아무리 애연가라도
암에 걸리면 담배를 끊는다지.

흥, 목숨이 그렇게 아까운가.'
죽음이 정말 무섭지 않으냐는 말에는

'오히려 기뻐.

생각해 봐.
죽으면 더 이상 돈이 필요 없다고.

돈을 안 벌어도 되는 거야.

돈 걱정이 없어지는 것만으로도
행운인 걸”이라고 응수한다.



남은 날이 2년이라는 선고에
십수년간 앓던 우울증이 거의 사라질 정도다.

'죽는다는 사실을 아는 건
자유의 획득이나 다름없다.'

고독과 노화에 대한 생각은 끊이지 않는다.

심해지는 건망증을 마주할 때마다
치매를 앓다 죽은 어머니를 떠올리며 겁내고,

섣달그믐에
비디오를 5~6개 빌리려다가도

남의 눈에
불쌍한 할머니로 비칠 게 싫어 포기한다.

좁은 길을 걸을 땐
자신이 여기서 죽어서 쓰러지면

사람들은 자기 시체를 넘어 다녀야겠지,
상상한다.



몇십 년 동안

'아 싫다,
가능하면 무엇이든 일은 안 하고 싶다’

는 생각으로
마감 직전에야 일을 했고,

'욘사마’와 한국 드라마에 푹 빠져
DVD 사느라 재산을 탕진하지만

그 덕에 불쾌한 항암치료를 견뎌 냈고

전후 시대 어려서 영양실조로 죽은
오빠와 남동생을 잊지 못하는 할머니.

그의 시원스러운 이야기는 생생한 삶 자체다

글 : 사노 요코 지음·이지수 옮김
음악 : Why Worry / Nana Mouskouri
편집 : June
출처 : 송운 사랑방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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