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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황

우리 문화유산

by 행복나눔이2 2023. 7. 23.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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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황
 
고대 중국의 전설로부터 유래된 봉황(鳳凰)은 신의(信義), 현인(賢人), 재주, 부귀, 장수, 풍년, 다산(多産), 고귀, 예견력 등을 상징하는 서조(瑞鳥)로 어질고 현명한 성인(聖人)과 함께 세상에 나타나는 새라고 한다.

'새 중의 왕은 봉황(鳳凰)새요, 꽃 중의 왕은 모란(牡丹)이요, 백수(百獸)의 왕은 호랑이다'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한국인들의 의식구조 속에서도 새 중의 으뜸인 새로 자리 잡고 있다.

봉황(鳳凰)은 원래 암수의 구분은 없었으나 한대(漢代)부터 볏이 있는 수컷을 봉(鳳)이라 하고, 볏이 없는 암컷을 황(凰)이라 하였다.

봉황과 관련하여 '닭의 새끼 봉 되랴', '닭이 천(千)이면​ 봉이 한 마리 있다'라는 속담에서 살펴볼 수 있듯이 닭이 보통 사람을 상징한다면 봉황은 뛰어나게 잘난 사람을 상징하며 고귀하고 품위 있고 빼어난 것의 표상으로 사용되었다.  

또한 '초사(楚辭)'에는 '봉은 먹이를 탐내지 않는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는 훌륭한 사람은 재물을 탐내지 않는다는 의미이며, 다시 말해 봉황은 모두 훌륭하고 품위있는 사람을 상징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고대 중국의 박물지인 '산해경(山海經)'의 '남산경(南山經)'에 따르면 '동쪽 500리 지점에는 단혈산(丹穴山)이 있는데, 그 위에 금옥(金玉)이 많았고, 새가 있었는데 그 형상은 마치 닭과 같았으며

다섯 가지 빛깔에 무늬가 있고 울음소리는 다섯 가지의 신묘한 소리를 내며, 먹고 마심이 자연의 절도에 맞으며 저절로 노래하고 춤을 추는데 이것을 봉황(鳳凰)이라고 부른다.


봉황이 나타나면 뭇새들은 그 뒤를 따르므로 뭇새의 왕으로서 귀하게 여기는 영조(靈鳥)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처럼 봉황은 실제하는 닭에 인간의 상상력을 가미하여 만든 상서로운 새다.

실제하는 동물에 바탕을 두고 창조했기 때문에 봉황을 비롯한 상상의 동물들은 그 근거가 되는 동물의 속성을 지니고 있다.

그런 이유로 봉황(鳳凰)은 기린(麒麟), 거북(龜), 용(龍)과 함께 사령(四靈)의 하나로 신성시 됐다.

봉황(鳳凰)은 새 중의 으뜸으로 동방 군자의 나라에서 나와 사해(四海)의 밖을 날아 곤륜산(崑崙山)을 지나 지주(砥柱)의 물을 마시고 약수(弱水)에서 깃털을 씻으며, 저녁에는 풍혈(風穴)에서 잠을 잔다고 한다.

이 새가 한번 나타나면 천하가 태평하게 되어 봉황은 천자(天子)의 상징으로 인식되었다.

봉황 속의 기러기 모습은 신의를 생명처럼 지킴을 상징한다.

또한 기린(麒麟)으로 인해 슬기와 재주를 갖춘 현인도 의미하며, 제비 모습을 닮은 턱은 비를 오게 하는 재주, 부귀, 장수를 대표한다.

또 닭의 부리를 닮은 모습은 여명이 다가오는 것을 가장 먼저 감지하는 대표적인 동물로 인식되어 왔고, 뱀의 몸은 풍년과 다산을 의미한다.

 
▲백제 금동용봉 대향로   봉황은 사신도(四神圖)의 남주작(南朱雀)보다 더 오래된 동양의 용봉(龍鳳)사상의 상징이다.

상상의 동물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위상을 차지하고 있는 봉황과 용은 점차 시간이 지나가면서 용은 황제를, 봉황은 황비를 상징하게 되었다.

우리나라는 물론 중국과 일본에서도 문양으로 폭넓게 사용하여 왔다.

1996년 백제 나성과 능산리 고분 사이 절터의 한 구덩이에서 발견된 450여 점의 유물과 함께 발견된 금동용봉대향로(金銅龍鳳大香爐)는 백제시대 봉황문의 대표적인 형태를 취하고 있다.

고려시대가 되면 삼국시대에 나타났던 주작(朱雀) 형태의 봉황문양은 거의 사라진다.

수호신적인 의미보다 문양으로서 한층 더 장식화되기 시작하며 대부분의 봉황 문양은 꼬리가 길고 날개를 큰 새처럼 표현했다.

그리고 청자 문양에서도 구름과 함께 봉황문이 자주 등장한다. 조선시대에도 백자에 청화(靑華)나 진사(辰砂)로 그렸으나 고려 때보다 간략한 형식을 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봉황은 그 시기별로 모습이 조금씩 달라지기는 하지만 대체로 닭 머리와 원앙 날개, 그리고 길고 탐스러운 꼬리를 갖추고 있다.

▲문자도(文字圖) 병풍 중 '염'에 그려진 봉황의 모습
현재 전해지고 있는 봉황 그림은 대개 민화로 분류되어 있다.

봉황을 소재로 하는 그림에는 대부분 오동나무가 함께 등장하는데, 때로는 오동나무 대신 대나무가 등장하기도 한다.  

오색 구름위로 솟아오른 오동나무 또는 대나무 아래에 한 쌍의 봉황이 그려지는데, 닭인지 봉황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때도 있다.  


화조도(花鳥圖) 10폭 병풍 중 봉황 부분
  문자도 뿐만 아니라 화조도에도 반드시 봉황을 소재로 하는 그림이 그려진다.

봉황 두 마리가 그려지면 쌍봉도(雙鳳圖)라 부른다.

쌍봉도에도 한 그루 오동나무가 배경이 되어 암수 한 쌍의 봉황이 다정하게 함께하며 표현된 다른 소재들과 함께 그 자체만으로도 신비로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1967년 대통령 표장에 관한 공고 제정 이후 사용하고 있는 청와대 정문의 봉황문장
 

고귀함과 빼어남을 상징하는 봉황의 문양은 오늘날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대통령 문장(紋章)으로도 사용되고 있다.

1967년 대통령 표장에 관한 공고가 제정된 이후 대통령 표장 및 대통령기에 봉황 문양을 사용해 왔다.
▲화조도(花鳥圖)에 나타난 봉황과 오동나무  

▲안동 임동면 수곡리 봉황사.
이곳의 대웅전 단청은 봉황이 칠했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청화백자봉황문호

 

▲화조도(花鳥圖) 병풍 중 봉황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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