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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금소총 제226화 ~ 제228화

고금소총

by 행복나눔이2 2024. 1. 15.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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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금소총 제226화 -

아버지와 딸이 서로 속이다
(父女相譎)



한 시골에 어떤 선비가 딸을 하나 두어 매우 아끼며 길렀다.
그 딸이 자라 출가를 하니, 그 시집은 수십 리 떨어진 마을에 있었다.  

선비는 애지중지 기른 딸을 시집보내 놓고는 보고 싶을 때마다 늙은 몸으로 땀을 뻘뻘 흘리면서 수십 리 먼 길을 걸어 찾아가지만,

딸은 그저 인사만 할 뿐 술 한 잔 밥 한 그릇 대접하지 않고 돌려보내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매양 쫄쫄 굶고, 그 먼 길을 다시 걸어 기진맥진 집으로 돌아와서는 분통을 터뜨렸다.

"내 그것을 어떻게 길렀는데, 그 먼 길을 걸어서 간 아비에게 물 한 모금 대접하지 않고 돌려보내니. 그렇게 무심한 것이 어디 또 있단 말인가?

내가 죽었다 해도 애통해 하기나 하겠는가?
내 한번 시험 삼아 거짓으로 죽었다 해놓고 그 아이 하는 꼴 좀 봐야겠다."  

선비는 이렇게 원망하며 아내와 상의하여 언약하고, 사람을 시켜 부친 사망의 부고를 딸에게 보냈다.  

그리고는 홑이불을 쓰고 죽은 듯이 누워 있으니, 부고를 받은 딸이 즉시 달려와 슬피 울며 곡을 하는데 그 내용 또한 황당했다.

"이 무슨 일이란 말입니까?

아버님이 엊그제 저의 집에 오셨을 때 쌀밥과 고깃국으로 식사를 대접하고 맛있는 술과 안주도 장만해 올렸었는데,

그 때 아버님은 맛있게 잡수시고 신관도 훤하니 좋으셨습니다.
그랬는데 며칠 사이에 이렇게 돌아가시다니 이 무슨 변고이십니까?"  

이렇게 거짓말을 하면서 통곡을 하는데 갈수록 거짓말은 커져만 갔다.

"그 날 아버님께서는 어느 골짜기 목화밭과 어느 들판의 논을 이 딸에게 주겠노라고 약속까지 하셨는데 그대로 세상을 떠나시고 말았으니,

그 전답들을 어디에다 호소하여 받으라고 이렇게 돌아가셨습니까?
정말로 염라대왕도 야속합니다요."  

딸이 이렇게 울면서 말하는 것은 집안사람들이 이 소리를 듣고, 살아 생전 부친의 말씀을 그대로 처리해 주어야 한다는 일종의 거짓 연극이었다.  

선비가 죽은 듯이 누워서 듣고 있자니, 딸의 행동이 너무나 교활하고 요사스러워 도저히 그대로 있을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홑이불을 걷어치우고 벌떡 일어나 앉아, 눈을 부릅뜨고, 손을 내저으면서 큰 소리로 외쳤다.

"이 염치없는 악독한 년아! 내가 죽었다고 하여 와서는, 어찌 그리 어처구니없는 거짓말을 한단 말이냐?

내 엊그제 언제 네 집에 갔으며, 지난날 네 집에 갔을 때 물 한 모금 내게 대접했단 말이냐?

내 언제 네게 전답을 주겠다고 했기에, 그런 허황된 말을 한단 말이냐?
세상에 너 같은 악한 딸년이 또 어디 있겠느냐?

보기 싫다. 당장 물러가거라!"  

이렇게 흥분하여 꾸짖으니, 통곡을 하던 딸이 슬그머니 일어나 눈물을 거두고는 부친의 손을 잡으면서,

"아버님, 아버님의 돌아가심도 어디 정말 돌아가신 것이며, 제 울음도 어찌 정말 울음이겠습니까?

거짓 초상에 거짓 곡을 한 것이니 너무 화내지 마소서." 하고 애교 있게 웃는 것이었다.  

이에 선비는 딸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아무 말이 없다가, 따라 웃으면서 그만 시집으로 돌아가라 했다 한다.



• 고금소총 제227화 -

공연히 헛걸음만 하다
(公然虛行)



 옛날에 한 사람이 있었는데 지극히 어리석고 게을렀다.  

마침 숙부가 세상을 떠났는데, 연락을 받고도 문상 갈 생각을 전혀 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래서 아내가 하도 답답해서 이렇게 책망했다.

"여보, 당신은 숙부님이 운명하셨는데도 문상 갈 생각을 안 하니 무슨 까닭입니까?

어서 가서 문상을 해야지요."
그러자 이 사람은, "뭐 문상 같은 건 그렇게 급히 서둘 일은 아니잖아?"

하면서 역시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내가 여러 번 권하고 독촉하니 부득이 일어나 상가로 갔는데, 미처 문상도 하기 전에 상주인 종제에게 묻는 것이었다.

"종제! 숙부님이 생전에 쓰시던 갓은 어디 있는가?
평소 좋아 보여서 내가 가져다 쓰고 싶어 그런다네."

"아, 형님. 늦었습니다. 건넛마을 이서방이 탐을 내면서 달라기에 벌써 주어 버렸는데요."  

"응, 그랬군. 그러면 숙부님이 쓰시던 여름 휘항1)은 어디 있는고? 내 가져다 쓰고 싶은데."

1)여름 휘항(凉揮項) : 목에 땀이나 옷이 달라붙는 것을 막기 위해 목뒤에 착용하는 것

"형님, 그것도 목수에게 주었습니다.
통나무를 켜서 관을 짜느라 너무 수고가 많기에 주어서 보냈답니다."  

"목수에게 주었다고? 그렇다면 숙부님의 낡은 진신2)은 어디 있지?
2)진신(泥鞋,니혜) : 비올 때 신는 기름 입힌 가죽신

그게 아직 멀쩡하던데 내가 신으면 좋겠어."

"형님, 그 진신도 말입니다. 염습을 하느라 많이 애쓰신 동네 노인께서 가져가겠다고 하시기에 드렸습니다."  

종제가 이미 남에게 모두 주어 버렸다는 말에, 이 사람은 하나도 가져갈 것이 없다고 투덜대고 일어서면서,

"그렇다면 오늘은 공연히 헛걸음만 했구나." 라고 말하고는   문상도 하지 않은 채 시무룩해 돌아가 버리는 것이었다.

이를 본 조문객들이 혀를 차지 않는 사람이 없었더라 한다.



• 고금소총 제228화 - 문자 해석하는 첩 (才女釋義)



  옛날에 한 재상이 첩을 들여놓으니 매우 총명했으며 문자도 읽을 줄 알았다.  

또한 재상의 집에는 한 문객(文客)이 드나들었는데, 해학을 좋아해 재상이 매우 친근하게 대하고 우스갯소리로 얘기하며 서로 무관한 사이로 지냈다 .

어느 따뜻한 봄날이었다.

재상이 첩과 함께 후원 정자에서 봄 경치를 구경하고 있으니, 점심 무렵 그 문객이 아이를 시켜 다음과 같은 네 글자를 적어 재상에게 드리는 것이었다.

그러자 재상이 또 무슨 해학인가 하고 종이를 펼쳐보니, '일심인복(日心人腹)' 이라 적혀 있었다.  

이에 재상이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 뜻을 알 수가 없어 만지작거리고 있으니 첩이 물었다.

"대감께서는 무엇을 가지고 그렇게 깊이 생각하십니까?"

"아, 그 문객 말일세. 이렇게 네 자를 적어 보내왔는데, 도무지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가 없어 고심중이네."

하면서 재상은 그 종이를 첩에게 주며 생각해 보라고 했다.  
그러자 첩이 그 글을 몇 번 자세히 읽어 보더니 웃으면서 아뢰었다.

"예, 이것은 별로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일(日)'자를 아래로 좀 길게 썼으니 곧 '긴긴 날'이라는 뜻이오며,  
'심(心)'자를 좀 자세히 보소서. 두 점을 찍어야 하는데 한 점만 찍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점이 하나가 없는 '心'자, 곧 '무점심(無點心)'으로 점심밥이 없다는 뜻이옵니다.  

그리고 '사람 인(人)'자는 다른 글자보다 작게 썼으니 '소인(小人)'이란 뜻으로 썼으며,  

'배 복(腹)'자 역시 '口'자 안에 '한 일(一)'자를 넣지 않고 비웠으니 '뱃속이 비었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전체적으로 '긴긴 날 점심밥은 없고 소인의 뱃속은 비었습니다. (長日無點心 小人腹中空)' 라는 말을 하고자 하였사오니,

오찬을 마련해 주어야 할 것으로 생각되옵니다."  

이 말을 들은 재상은 첩을 향해 매우 기특하다고 칭찬하고, 곧 점심 식사를 마련해 문객에게 보내 주면서 첩이 해석한 이야기를 들려주니,

문객은 그녀의 재능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한다.

출처:[김영동교수의 고전 & Life:티스토리]



우리 벗님들~!
健康조심하시고

親舊들 만나
茶 한잔 나누시는

餘裕롭고 幸福한 나날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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