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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송 세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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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나눔이2 2025. 2. 8. 0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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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송 세월🌹


핸드폰에 부고가 찍히면
죽음은 배달상품처럼 눈앞에 와 있다.

액정화면 속에서 죽음은
몇줄의 정보로 변해 있다. (중략)

부고를 받을 때 마다
죽음은 이행해야만 할 일상의 과업처럼 느껴진다.

애착 가던 것들과 삶을 구성하고 있던
치열하고 졸렬한 조건들이 서서히 물러가는

풍경은 쓸쓸해도 견딜 만하다
이 것은 속수무책이다

허송세월 중 '늙기의 즐거움' 에서



나는 스무 살 무렵부터
예순다섯 살까지 45년간 담배를 피웠다.

하루에 한 갑씩,
어떤 날은 두갑씩 기를쓰고 피워댔다

지금은 담배를 끊은 지 10년이 되어 오는 데,,
꿈 속에서는 가끔 피운다.

잠들기 전에 오늘 꿈 속에서
한 대 피웠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날도 있다.

담배는 참으로 무서운 습관이다.

와인에는 현실과 부딪히는 술맛의 저항감이 없다.
와인의 취기는 계통이 없다...

와인은 현실을 서서히 지우면서 다가온다.

막걸리는 생활의 술이다.
막걸리는 술과 밥의 중간쯤 자리에 있다.

막걸리는 생활적이고 와인은 몽환적이다.

소주는 아귀다툼하고,
희노애락하고 생로병사하는 이 아수라(阿修羅)의 술이다.

소주는 삶을 기어서 통과하는 중생의 술이다.

허송세월 중 '늙기의 즐거움'에서



나는 오후에 두어 시간쯤
햇볕을 쪼이면서 늙그막의 세월을 보낸다.

해는 내 노년의 상대다.

젊었을 때 나는
몸에 햇볕이 닿아도 이것이 무슨 일인지 알지 못했고,

나와 해 사이의 공간을 들여다보지 못했다.

지나간 시간의 햇볕은 돌이킬 수 없고
내일의 햇볕은 당길 수 없으니

지금의 햇볕을 쪼일 수밖에 없는데,

햇볕에는
지나감도 없고 다가옴도 없어서

햇볕은
늘 지금 내가 있는 자리에 온다.

햇볕은
신생하는 현재의 빛이고 지금 이 자리의 볕이다.

혀가 빠지게 일했던 세월도
돌이켜보면 헛되어 보이는데,

햇볕을 쪼이면서 허송세월 할 때
내 몸과 마음은 빛과 볕으로 가득 찬다.

나는 허송세월로 바쁘다.



요즘엔 문상 가는 일이 잦아졌다.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이 죽으면
순서대로 가는구나 싶고,

나보다 나이가 적은 사람이 죽으면
그럴 수도 있겠구나 싶지만,

나와 동갑내기가 죽었다고 하면
올 것은 기어이 오는구나 싶다.

꽃 핀 나무 아래서
온갖 냄새들의 기억이 되살아 나는 노년은

늙기가 힘들어서 허덕지덕 하지만,
이 세상의 모든 아기들이 태어나기를 기다린다

이 미세먼지 속에서 아기들이 태어나서
젖 토한 냄새를 풍겨 주기를 나는 기다린다.

이 마지막 한 문장을 쓰기 위하여
나는 너무 멀리 돌아왔다.

글 :김훈 산문집 '허송세월`에서
음악: For The Good Time / Perry Como

편집 : June
출처 : 송운 사랑방 카페



우리 벗님들~!
健康조심하시고

親舊들 만나
茶 한잔 나누시는

餘裕롭고 幸福한 나날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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