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남편,오빠,부부

좋은 글

by 행복나눔이2 2022. 3. 11. 08:01

본문



(핸드폰으로는 ▷ 를 누르세요)

남편  

아버지도 아니고 오빠도아닌

아버지와 오빠사이의 촌수쯤 
되는남자

내게 잠못이루는 연애가 생기면

제일먼저 의논하고 물어보고 
싶다가도

아차, 
다되어도 이것만은 안되지 하고 

돌아누워버리는
세상에서 제일 가깝고 제일 먼 남자

이 무슨 원수인가 싶을때도있지만
지구를 다 돌아다녀도

내가낳은 새끼들을 
제일로 사랑하는 남자는

이 남자일것같아

다시금 오늘도 저녁을 짓는다

그러고보니 밥을 나와함께
가장 많이 먹은 남자

전쟁을 가장 많이 가르쳐준 남자



▶ 글(詩) : 문정희
▶ 음악 : The Power Of Love
                     - Celine Dion
▶ 편집 : 송 운(松韻) 






오빠  
        
  / 문정희

이제부터 세상의 남자들을
모두 오빠라 부르기로 했다

집안에서 용돈을 제일 많이 쓰고
유산도 고스란히 제몫으로 차지한

우리집의 아들들만 오빠가 아니다

오빠!
이 자지러질 듯  상큼하고 
든든한 이름을

이제 모든 남자를 향해 
다정히 불러주기로 했다

오빠라는 말로 한방 먹이면

어느 남자인들 
가벼이 무너지지 않으리
꽃이 되지 않으리.

모처럼 물안개 걷혀
길도 하늘도 보이기 시작한

불혹의 기념으로 
세상 남자들은

이제 모두 나의 오빠가 되었다.

나를 어지럽히던 그 거칠던 숨소리 

으쓱거리며 휘파람을  불러주던 
그 헌신을

어찌 오빠라 불러주지  
않을 수 있으랴

오빠로 불려지고 싶어 안달이던
그 마음을
어찌 나물캐듯 캐내어주지 않으랴

오빠! 이렇게 불러주고 나면

세상엔 모든 짐승이 사라지고
헐떡임이 사라지고

오히려 두둑한 지갑을 송두리째 
들고 와

비단구두 사주고 싶어 가슴 
설레이는

오빠들이 사방에 있음을 
나 이제 용케도 알아버렸다.





부부  

   / 문정희 

부부란 
무더운 여름밤 멀찍이 잠을 청하다가

어둠 속에서 앵하고 모기 소리가 들리면

순식간에 둘이 합세하여 모기를 잡는 
사이이다.

너무 많이 짜진 연고를 나누어 바르는 
사이이다

남편이 턱에 바르고 남은 밥풀 꽃만 한 
연고를 손끝에 들고

어디 나머지를 바를 만한 곳이 없나 
찾고 있을 때

아내가 주저 없이 치마를 걷고
배꼽 부근을 내어 미는 사이이다

그 자리를 문지르며 
이달에 너무 많이 사용한

신용카드와 전기세를 문득 떠올리는 
사이이다

결혼은 사랑을 무효화시키는 긴 
과정이지만
결혼한 사랑은 사랑이 아니지만

부부란 어떤 이름으로도 잴 수 없는
백 년이 지나도 남는 암각화처럼

그것이 풍화하는 긴 과정과
그 곁에 가뭇없이 피고 지는 

풀꽃 더미를
풍경으로 거느린다

나에게 남은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다가

네가 쥐고 있는 것을 바라보며
내 손을 한번 쓸쓸히 쥐었다 펴보는 
그런 사이이다

부부란 서로를 묶는 것이 쇠사슬인지
거미줄인지는 알지 못하지만

묶여 있는 것만이 확실하다고 느끼며
어린 새끼들을 유정하게 바라보는 

그런 사이이다

나에게 남은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다가 

네가 쥐고 있는 것을 바라보며 
내 손을 한번 쓸쓸히 쥐었다 펴보는 

그런 사이이다   

- 계간 『문학수첩』 2008년 가을호

 
문정희(文貞姬, 1947 ~ )

동국대 국문과졸업,서울여대 문학박사. 
동국대 고려대 교수 역임. 1969년 
<월간문학> 신인상 당선으로 시인 등단.
진명여고 재학시절에 펴 낸 첫시집 
<꽃숨>이후 많은 시집및 수필집 발간. 
현대문학상 소월시문학상 정지용 
문학상 동국문학상 천상병문학상등 수상 

주로 삶의 생명력과 의미에 대한 관찰 및 
통찰을 시로 나타냈으며, 최근에는 여성
성과 일상성을 기초로 한 특유의 시적 
에너지와 삶에 대한 통찰을 
담은 시를 많이 썼다. 

시집으로 “문정희 시집”(1973), 
“아우내의 새”(1986), 
“그리운 나의 집”(1987), “제 몸 속에 
살고 있는 새를 꺼내 주세요”(1990), 
“찔레”(2008) 등이 있다






'좋은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것이 사람의 인연이라고..  (0) 2022.03.11
인생은 둥글게 둥글게  (0) 2022.03.11
누가 버린 꽃을 꽂았을 뿐인데...  (0) 2022.03.10
일상의 기적  (0) 2022.03.10
하룻 밤  (0) 2022.03.10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