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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과 배려 , 늙은 나는 어떤 모습으로 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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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나눔이2 2024. 2. 10. 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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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과 배려🌷



40대 중반의 J변호사는 어느날 지인의 장례식장에 가서 문상을 마치고 나오다가 다른 방 빈소에 유치원생 같은 아이의 영정 사진을 보았다 ​

조문객은 아무도 없었고 아이의 부모 같은 젊은 부부만 상복을 입은 두개의 섬처럼 적막하게 앉아 있었다 ​

J변호사는 조용히 들어가 아이의 영정 사진에 분향하고 절을한뒤 상주 인 부모에게 말했다

"지나다가 모르지만 너무 가슴이 아프고 안타까워 아이의 명복 이라도 빌어주려고 들어 왔습니다" ​

50대 중반의 K프리랜서는 어느날 갑자기 아내가 긴 머리카락을 싹둑 잘라버렸다

아내의 친구가 항암치료 때문에 삭발을 한 다음 창피해서 외출을 못하고 집에만 틀어박혀 있자 머리 깎은 한 사람은 쳐다 보지만

두 사람은 안쳐다 본다며 자신도 긴 머리카락을 친구처럼 빡빡 깎아 버린 것이다 ​
그 뒤로 시장이든 백화점이든 늘 함께 다녔다

부인이 비구니가 되는 줄 알고 매일 좌불안석 이었던 K프리랜서는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

50대 중반의 중견 출판사의 H대표는 어느날 골목에서 남루한 행색의 걸인 같은 사내를 보고 지폐를 꺼내 적선하려다가 멈칫했다 ​

돈을 불쑥 내미는 것은 인간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 때문에 잠시 고민하다가 사내의 등을 향해 말했다 ​

"아저씨 이거 흘리고 가셨어요" 바닥에 떨어진 돈을 주워 주인에게 돌려주는 척하며 적선을 했다

마치 톨스토이의 소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의 한 장면처럼~

이 세 사람의 따뜻한 일화는 우리 주변에 흔할것 같으면서도 흔하지 않은 실제 얘기들이다 ​

생면부지의 빈소에 분향하며 헌화했다는 얘기를 아직 들어 본 적 없고 ​ 암투병 중인 친구를 위해 같이 삭발했다는 얘기를 아직 들어 본 적 없고 ​

적선은 하되 걸인을 주인으로 만들어 명분을 세워주고 자존심을 배려하는 방법까지 고민했다는 얘기를 아직 들어 본 적 없다 ​

요즘처럼 공감과 배려가 크게 강조되는 시대도 드물다

그러나 대부분 먼 발치에서 잠시 눈물짓고 잠시 슬퍼하는 것으로 공감과 배려를 소비해 버린다 ​

커피를 마시는게 아니라 커피 브랜드를 마시는 것과 같다

공감과 배려는 브랜드가 아니다 소비도 아니다 값싼 동정은 더욱 아니다
그것은 작은 감동의 생산이고 그 생산이 모여 감동의 연대를 이룬다 ​

아이 엄마는 낯선 조문객 하나만으로도 세상이 따뜻했을 것이고 ​ 암투병 환자는 삭발한 친구 하나만으로도 이미 절반은 다 나았을 것이며 ​

걸인은 일부로 자신의 떨어진 자존감을 세워주는 것 하나 만으로도 긴 터널같은 일상에 잠시나마 빛 같은 위안이 되었을 것이다

이 세 분의 인품과 마음이 진짜 생산적인 공감과 배려의 씨앗인 것입니다 ​

그 씨앗이 자라 꽃을 피우고, 열매를 거두며
그리고 다시 따뜻한 봄이 오게 됩니다 🙏

🎁 - 카톡 글 중에서 - 🎁



❤ 늙은 나는 어떤 모습으로 살까? ❤


사람이 붐비는 지하철역 계단에 웅크리고 앉아 젊은 사람들에게 돈을 달라고 손을 내미는 노파를 봤다.

불쌍한 표정을 짓지만 이상하게도 그 얼굴에서 젊은 날의 어떤 모습들이 느껴졌다.

얼굴에 그 과거가 그림으로 잠재해 있기 때문인가?

며칠 후 다시 그 자리를 지나가다가 허공을 가르는 그 노파의 날카로운 소리를 들었다.

“저 년이 나보고 젊어서 뭐했길래 이렇게 사느냐고 그래요.
야 이년아, 너도 나 같이 되라.”

노파의 저주가 뼈에 사무치는 것 같았다.
그 노파는 왜 늙음의 준비를 하지 못한 채 구걸을 하고 있을까.

젊어서 노후의 준비를 못하고 인생의 절벽 밑바닥에 떨어진 노인들이 많다.
얼굴만큼이나 다양한 사정이 있을 것이다.

인기 있던 가수가 내게 노숙자 합숙소에 있게 해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다.
내가 그 시설을 후원하는 걸 알고 부탁한 것이다.

왜 그렇게까지 됐을까?
나는 이해하기 힘들었다.

한때 대단한 인기를 누렸던 원로가수 현인씨가 이런 말을 하는 걸 들었었다.

“공연장을 꽉 채운 관객이 앵콜을 요구하면서 나가지 않는 바람에 같은 곡을 아홉번이나 부른 적도 있어요.

부르는 노래마다 히트를 쳤었죠.
그렇지만 인기라는 건 허망한 거죠.

세월이 가니까 잊혀졌어요.
미국으로 갔어요.

식당을 했지만 실패하고 아내와도 헤어졌어요.
그리고 노인이 됐어요.

아무것도 남은게 없어요.”

늙고 가난한 것만이 불행의 원인은 아닌 것 같다.
의과대학장을 한 저명한 칠십대 노의사에게서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돈과 명예가 있다고 노후가 행복한가요?
그런 거 다 소용없어요.

하루라도 따뜻하게 살고 싶어요.
저는 가난한 의대생이었어요.

부자 집 딸과 결혼했죠.
처가에서 작은 의원을 차려줬어요.

매일 번 돈을 아내에게 바쳤죠.
아내도 의사였죠.

저에게 밥 한번 따뜻하게 해 준 적이 없어요.
제 어머니가 아들을 찾아와도 역할이 식모였어요.

어느 혹독하게 춥던 겨울날이었어요.
집으로 돌아왔는데 어머니가 찬물로 며느리의 빨래를 하는 걸 봤어요.

가난이 죄였죠.

아내는 제가 번 돈으로 땅과 건물을 샀는데 칠십년대 부동산 경기를 타고 엄청나게 값이 올랐죠.

난 돈이 목적이 아니었어요.
연구를 게을리하지 않았어요.

내 분야에서 권위자가 되려고 곁눈질을 하지 않고 살아왔죠.
나는 노력해서 대학병원장이 됐어요.”

그는 모든 걸 다 가진 셈이었다.
칠십대 노인이 된 그가 어느 날 모든 재산을 포기하고 가출을 했다.

병원장 자리도 그만두고 이혼소송을 제기했다.
그는 내게 그 동기를 이렇게 말했다.

“제가 어느 날 단골로 다니던 한식당에서였어요.

수더분해 보이는 주인여자가 생선의 뼈를 발라주고 국이 식을까봐 안절부절 못하는 걸 보면서 가슴이 울컥해졌어요.

그리고 따뜻해지는 걸 느꼈어요.
그동안 산 건 산 게 아니었어요.

그런 건 삶이라고 할 수 없죠.
그래서 집을 나와 작은 방을 하나 얻었죠.

저녁이면 내 방으로 돌아와 빨래판에 팬티와 런닝셔츠를 놓고 빨래 비누를 개서 문댔어요.

노년에 비로서 평안을 찾은 것 같아요.”

그를 보면서 노년행복의 본질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았다.
아직 젊을 때 늦기 전에 노년의 삶을 미리 그려봐야 하지 않을까.

‘나는 이렇게 나이들고 싶다’고 설계를 해보는 것이다.

노년을 미리 준비하지 않는 삶은 자신만 힘든 게 아니라 주위 사람과 사회까지도 피곤하고 불안하게 만든다.

내남없이 젊음이 영원할 것이라고 착각한다.

젊음이 어느 순간 증발해 버리고 거울 속에서 자신의 늙은 아버지나 어머니를 보는 게 삶의 현실이다.

나는 나이든다는 것은 무엇인가 수시로 음미해 왔다.
그건 비관이 아니라 현재의 삶을 잘 살기 위한 방법이기도 했다.

나의 과거가 쌓여 현재가 됐고 현재가 축적되어 미래가 되는 것이다.

나는 주변 선배들에게 육십오세 이후 죽을 때까지 얼마의 돈이 있으면 행복할 수 있을까를 수시로 물어보았다.

나의 기준은 검소한 생활을 하면서 친구나 이웃에게 정을 나누고 소통할 수 있는 돈이었다.

그 다음은 죽을 때까지 할 수 있는 취미가 겹쳐진 일이었다.
나는 그걸 글쓰기와 독서로 삼았다.

낮도 아름답지만 밤도 고요하고 안정되어야 하지 않을까.
나는 곱게 나이 들어가고 싶다

🎁 -엄상익 변호사 글- 🎁



우리 벗님들~!
健康조심하시고

親舊들 만나
茶 한잔 나누시는

餘裕롭고 幸福한 나날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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