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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한 ‘자식농사' 기준은? , 봉이鳳伊 김선달金先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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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나눔이2 2024. 9. 7. 0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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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공한 ‘자식농사' 기준은? 👨‍👩‍👧‍👦


지인 중에
자식들을 다 훌륭하게 키워낸 어르신이 있다.

여기서 ‘훌륭하게’ 란 세속적 기준에서
‘성공했다’ 고 인정받는 경우를 말한다.

아이들 교육에 헌신하고
비싼 학비를 대느라

평생 허리를 못 펴고 살아온 덕분에
아들 셋은 의사, 변호사, 교수가 됐다.

자식들의 성공을
평생 훈장처럼 자랑스러워하던 어르신은

아내가 세상을 떠난 뒤 홀로 남게 되었다.

상실감과 외로움으로
힘들어하던 어르신은 얼마 안 있어 병을 얻었다.

그러자 아들 셋은
곧바로 아버지를 요양원으로 보내버렸다.

물론 혼자서 거동이 힘든 정도가 되면

요양원이나 요양병원 신세를 지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피한 선택일 수는 있다.

그러나 거동을 할 수 있는 데도
서로 모시지 않으려고,

신경 쓰지 않으려 미루며 다투다가
‘손쉬운 타협’을 본 것이다.

아픈 몸보다 자신으로 인해
자식들이 눈치 보고 아웅다웅 하는게

더 견디기 힘들었던 아버지는
두 말 않고 요양원으로 갔다.

너무 잘 나가는 자식들이라
늘 바쁘다는 핑계로

면회는 가뭄에 콩 나듯 하는 자식들을
하염없이 기다리던 몇 년의 시간이 흐른 뒤

어르신은 쓸쓸하게 세상을 떠났다.
그런데 그 이후가 더 가관이었다.

저마다 사회적인 지위가 있는
자식들이다 보니

장례식장엔 문상객이 넘쳐났다.

그러자 막대한 조의금을 나누는 문제로
삼형제가 혈투를 벌이다

결국 재판까지 가고 의절로 마무리되었다.

세상 떠난 어르신이
하늘에서라도 이 모습을 본다면

얼마나 가슴이 미어졌을까...

지인 중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자식 둘을 대학에 보내지 못한 분이 있다.

대대로 가난한 집안에서
공부는 사치였고

그저 자식들 안 굶기기 위해
평생 뼈 빠지게 노동일을 했다.

그러자 자식들은
일찌감치 대학진학을 포기하고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직장을 잡고 돈을 벌기 시작했다.

가난한 부모님 때문에
공부를 더 하지도 못했고

이래저래 부모에 대한 원망이 있을 법도 한데
자녀들은 늘 부모님에게

항상 "고맙다"고 말한다.

낳아주고 길러주느라
최선을 다한 부모님의 인생을 존경하며

틈만 나면 부모님을 모시고
서로 살가운 정을 나누고 산다.

2019년 뇌졸중으로 투병 중인
유명 영화배우 알랭들롱 (Alain Delon : 2024년 사망)이

일본인 동거녀에게
정신적 학대를 당하고 있다고 자녀들이 고소했다.

안락사가 합법인
스위스에 살고 있는 알랭들롱은

"안락사가 논리적이고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며

"사람은 병원을 거치지 않고
평화롭게 떠날 권리가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지나가다 쇼윈도만 바라보고 있어도
옷가게 주인이 달려 나와

제발 자기네 옷을 입어달라며
공짜로 양복을 줬다는

세계 최고 미남 배우의 노후도
외롭고 힘들기는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아 씁쓸하다.

노년의 삶은 여러 가지 이유로 힘들다.

경제적 여유가 없어 힘들고,
병마와 싸우느라 힘들고,

외로워서 힘들다.

자식에게 학대를 받으면서도
드러내지 못하고

속앓이만 하는 노인들도 많다.

노인복지법에 따르면
노인학대는 ‘노인에게

신체적, 정신적, 정서적,
성적 폭력 및 경제적 착취

또는 가혹 행위를 하거나
유기 또는 방임하는 것’을 말한다.

‘노인 한 명이 사라지면
도서관 하나가 사라지는 것과 같다’는 말이 있다.

OECD 회원국 중 노인자살률이
1위인 한국에선 40분마다

한 개의 도서관이 사라지고 있다.

노인 고독사 역시
한국의 주된 사회문제 중 하나다.

사실 병약한 어르신을 돌보는 일은 쉽지 않다.

병원이나 요양시설이 아니라면
배우자나 자녀가 이를 감당해야 하지만

배우자 역시 역시 연로한 노인인 경우가 많다.

장성한 자녀가 있어도
각자 가정을 꾸리고 살아가기 바쁜 데

부모를 봉양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려운 경우도 많다.

우리 속담에
‘굽은 나무가 선산을 지킨다’는 말이 있다.

효자는 하늘에서 내린다는 데
도대체 성공한 ‘자식 농사’의 기준은 뭘까?

한 아이는 가슴에 안고,
한 아이는 손을 잡은 채

박물관에 들어오는
젊은 부부의 모습을 보며

잠시 상념에 잠긴다.🍒 

🎁 - 송문희 경기도 어린이 박물관장 - 🎁


💕 봉이鳳伊 김선달金先達 💕


金先達 앞에 鳳伊가 붙은 이유 

김선달이 서울 장안을 자주 드나 들었을때
어느 날 사람들로 붐비는 장터로 구경을 나섰다.

그런데 장터 한쪽에 닭장(鷄市場)이 섰는데
온갖 닭들이 우글댔다.

김선달이 닭장 속을 이리저리 보니까
유난히 살이 포동포동하고

털에 윤기가 흐르는
닭 한 마리가 눈에 들어왔다.

김 선달은 시치미를 떼고 닭장수에게 물었다.
주인장, 이게 무슨 날짐승이오?

거참 통통한게 보기 좋구먼.
주인은 눈을 크게 뜨며 속으로 생각하였다.

세상에 얼치기가 많다고 하더니만
이런 놈을 두고 하는 말인가 보구나.

닭도 알아보지 못한 것을 보니
꽤나 어리석은 놈인가 보다.

주인은 김선달이 얼치기인 줄 알고
골려 먹을 셈으로 말하였다.

이것은 봉(鳳)이오.

난데없이 닭을 봉황새라고 속이는 말을 듣고
김선달이 말하였다.

뭐, 봉이라고?

오호,
말로만 듣던 봉황새를 여기서 제대로 보게 되었구나.

그래,
그 새도 파는 것이오?

물론이오.
팔지 않을 거면 뭐하러 장터까지 가지고 나왔겠소?

주인은 제대로 걸려 들었구나,
생각하였다.

값은 얼마나 받을 생각이오?
열 냥만 내시오.

닭은 한 냥씩 받고 팔고 있지만
봉은 닭보다도 훨씬 값어치가 나가기 때문에

열 곱은 더 내야 한다는 것이 주인의 주장이었다.

김 선달은 값을 깎을 생각도 하지 않고
주인이 달라는 대로 열냥을 고스란히 건네주고 닭을 샀다.

그리고는 곧바로 관가로 달려갔다.

김선달은 관가를 지키고 있는 문지기에게
품에 안고 온 닭을 보여 주며 말하였다.

내가 방금 귀한 봉황을 구해 왔는데,
이것을 사또에게 바치려고 하니

사또께 말씀을 전해 주시오.
김선달은 닭을 가지고 사또 앞에 서게 되었다.

그렇지만 천지개벽을 한들
닭이 봉이 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결국 김선달은 사또를 희롱한 죄로
곤장 열 대를 맞았다.

꼼짝없이 곤장 열 대를 맞은 김선달이
눈물을 질금거리며 사또를 향해 하소연을 하였다.

사또, 억울합니다.
저는 죄가 없습니다.

이놈이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구나.
닭을 봉이라고 속인 죄가 없다는 것이냐?

저는 그저 닭장수가 봉이라고 하기에
닭값의 열 배를 치르고 샀을 뿐입니다.

사또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분명히 닭장수가 봉이라고 했단 말이냐?

예, 그렇지 않고서야
제가 왜 닭값의 열 배나 치렀겠습니까?

사또는 제법 영민한 사람이어서
상황을 금방 눈치채고

닭장수를 불러들이게 하여 물었다.

네가 닭을 봉이라고 속여
열 냥을 받고 판 게 사실이냐?

볼기를 맞아 얼굴에 잔뜩 독이 오른
김선달이 노려보고 있는지라

거짓말을 할 수가 없어서
닭장수는 사실대로 고하였다.

사또가 김선달에게 물었다.
그렇다면 이제 어찌하면 좋겠느냐?

김선달이 대답하였다.

저 자가 저를 속여 공매 (공짜매) 를 열 대 맞았으니까
저도 그 대가는 받아야 겠습니다.

제가 닭값의 열 배를 주고 가짜 봉을 샀듯이
저자에게 제가 맞은 곤장의 열 배인

백 대를 쳐주시던지
제가 저자에게 준 열 냥의 열 배인 백냥을

저에게 지불하라고 판결하여 주십시오.
그렇게 하면 모든 것이 공정할 듯 싶습니다.

사또가 듣고 보니 그럴듯한 이야기였다.

결국 닭장수는
거의 살아서 돌아갈 수가 없을 것이 분명하여

곤장 백 대를 대신하여,
김선달에게 백 냥을 주는 것으로 사건을 마무리 하였다.

이 이야기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전국 각지에 퍼져

사람들은 김선달의 이름 앞에
봉이라는 별칭을 붙여

봉이 김선달이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그리고 이때부터 어리숙하여
무엇이나 빼앗아 먹기 좋은 사람을

농으로 말할 때
봉 잡았다라는 표현을 쓰기 시작하였다.

봉ㅡ봉ㅡ봉 봉 잡았다

🎁 - 지인 카톡 글 - 🎁



우리 벗님들~!
健康조심하시고

親舊들 만나
茶 한잔 나누시는

餘裕롭고 幸福한 나날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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